중시조 중군사정부령 박구
우리 경주 박씨의 중시조는 고려시대 중군사정부령(中軍司正副令)을 역임하신 박구(龜, 1337~1404) 공입니다. 송애공의 현조, 즉 5대조 할아버지입니다. 중시조께서는 고려시대 3군 중 핵심 역할을 했던 중군의 부사령관급 직책으로 국가의 중요한 일을 하시던 중 고려가 망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이 건국되자 중시조께서는 벼슬을 물리시고 해안가에 칩거하셨는데, 지금의 인천광역시 서창 장아산 인근이었습니다. 조선 태조가 함께 국사를 수행하자는 권유를 여러 차례 하였으나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키며 이에 불응하셨습니다. 바깥세상에 자신을 감추고 나타나지 않고 산다고 하여 호를 장아(藏我)라 하였고, 이에 중시조가 사시던 뒷산도 장아산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인천 장아산 경주박씨 묘역
장아산 서쪽 구릉에 있는 경주박씨 종중 묘역에는 중시조 박구 공과 그 후손인 박간(朴幹), 박휘(朴徽), 박신겸(朴信謙), 박호겸(朴好謙), 박홍중(朴弘中) 등 11기의 묘가 있습니다.
이 묘역의 봉분, 묘표, 문인석, 망주석 등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유교적 묘제로서 가치가 큽니다. 특히 박휘, 박신겸, 박호겸 선조들의 묘표는 제작연대가 분명하여 조선 중기의 묘제와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금석문 자료로 인정받았고, 인천광역시는 2010년 5월 3일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62호로 지정했습니다.
좌찬성 박간
송애공의 고조부이시고 중시조의 아들이신 박간(朴幹) 공은 태종 16년(1416년, 丙申)에 치러진 문과에 합격하셨습니다. 과거 합격 내용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국조문과방목 제1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방목에는 본관은 경주, 을과 2등으로 합격, 부친의 성명은 중시조이신 박귀(朴龜), 관직은 감사 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후 박간 공은 성균관 대사성, 좌찬성 등을 역임하셨습니다. 대사성은 정3품 당상관으로 최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의 수장이었고, 좌찬성은 종1품으로 당시 삼정승을 보좌하는 높은 직위였습니다.
이조참판 박휘
송애공의 증조부이시고 박간 선조의 아드님이신 박휘(朴徽) 선조께서는 노비에 대한 송사와 문서관리 등을 담당하는 장례원의 수장인 정3품 판결사를 역임하셨습니다. 돌아가신 후에는 정3품 가선대부와 정2품 이조참판으로 추존되었습니다.
이조참판 박호겸
송애공의 조부이시고 박간의 아드님이신 박호겸(朴好謙) 선조께서는 연산군 2년(1469년)에 치러진 식년시 문과에 합격하셨습니다. 국조문과방목 제5권에는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익지(益之), 전력은 생원(生員), 아버지 성함은 박휘(朴鰴), 조부 성함은 박간(朴幹) 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박호겸 선조께서는 종2품 가선대부의 품계로서 이조참판의 관직까지 수행하셨습니다.
Historical Records
문헌 자료